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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종자로 고추농사 ‘폭망’…업체 “기후·농민 탓” 나몰라라
  • 작성일 : 2022-09-16
    작성자 : 팜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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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농사를 50년간 지었지만 올해처럼 심하게 망친 적은 없었습니다.”

충북 단양에서 고추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불량 종자로 큰 피해를 봤다며 관할당국에 대책을 호소하고 나섰다.

적성면 애곡리의 농민 배문영씨(70)는 올해 1419㎡(430평) 밭에 심은 고추의 80%가량이 정상적인 출하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배씨는 “일부 고추를 수확해 말려봤는데 더 쭈글쭈글해질 뿐 정상품에 비해 품질이 한참 떨어져 상품성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01010100501.20220916.001348224.02.jpg](https://www.nongmin.com/upload/bbs/202209/20220915101946206/20220915101946206.jpg)
충북 단양군 매포읍 상시리의 농민 임병주씨가 수확해 건조한 A업체의 B고추 품종(위쪽)과 다른 품종의 고추.
현장 피해 상황을 확인한 안재학 북단양농협 조합장은 “고추 줄기의 생육 상태가 좋은 것을 보면 관리는 제대로 한 것”이라며 “하지만 인접한 밭의 고추에 비해 무게가 덜 나가고 여러가지 기형이 나오는 것은 종자의 순도가 높지 않아 그런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배씨의 밭에서 차로 25분 거리에 있는 임병주씨(65·매포읍 상시리)는 3300㎡(1000평) 규모 밭에 문제가 된 종자와 다른 종자를 6대4 비율로 함께 심었으나 문제의 종자 쪽에서만 품질 불량이 발생했다.

임씨는 “같은 밭에 심고 관리도 똑같이 했는데 한쪽만 품질 불량인 것을 보면 종자 문제가 분명하다”며 “도매상인은 품질 문제를 들어 정상품 시세의 반도 안되는 4000원을 불러 허탈했다”고 말했다.

고추 재배 50년 경력의 조장희씨(70·응실리)도 같은 피해를 호소했다. 조씨는 “2640㎡(800평) 규모 밭에 1500만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했는데 불량 종자 때문에 절반도 못 건질 것 같다”며 “가뭄에 관수도 제때 하고 병충해 방제를 위한 약도 치는 등 예년과 똑같이 철저히 관리했는데도 고추가 불량으로 나오는 건 종자 자체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이 종자 불량으로 주장하는 고추는 국내에서 손꼽는 A업체가 판매한 품종이다. 올 1월 탄저병과 칼라병에 저항성이 강하고 품질과 수량도 우수하다는 얘기에 농민들은 다른 종자보다 더 비싼 값을 치르고 이 업체의 B고추 종자를 구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확기가 다가오면서 고추의 표면이 쭈글쭈글해지는가 하면 구부러지고 길쭉한 기형과가 나오는 등 피해가 확산되자 A업체에 서둘러 연락했다.

농민들에 따르면 두차례 현장을 찾은 A업체 관계자는 품질검사 진행 후 바이러스와 세균에 감염되지 않았고 발생 원인은 일조부족·기온·수분공급 등 기후 영향과 농가 관리 탓으로만 돌렸다고 한다. 이에 농민들은 품종 불량 원인 파악을 위해 업체 관계자에게 문제의 B종자를 구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해당 종자를 모두 폐기처분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배씨는 “다른 종자는 다 있는데 B종자만 없다는 얘기를 듣고 농민을 우롱하는 것 같아 황당함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1년 농사인데 종자만 팔고 책임은 안 지는 행태에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만 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후 배씨는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B종자를 구했고 농업기술센터와 A업체의 확인을 거쳐 국립종자원에 유전자 검사를 의뢰한 상태다. 종자원은 한달 남짓 걸리는 검사에서 농민들이 재배한 고추와 B종자의 일치 여부를 확인한다. 이를 통해 홍보와는 다른 종자를 판매했는지 판단할 계획이다.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고추농사를 짓다보면 불량 발생이 종종 있지만 세 농가처럼 정상 범위를 한참 벗어난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업체 관계자는 “문제가 된 B종자가 모두 폐기됐다고 설명한 건 신입 영업사원이 잘못 알고 그런 것”이라며 “다만 병리검사 결과 바이러스와 세균 등이 검출되지 않았고 종자에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추가로 현장조사를 진행하고 종자원의 유전자 검사 결과 종자 문제로 판단되면 그에 합당한 대책을 세우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모든 문제를 기후와 농민 탓으로 돌리는 건 종자업체의 횡포”라며 “업체는 선의의 피해자가 추가로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원인을 규명하고 합리적인 보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양=황송민 기자